삼천리 Together Vol. 128  2022.11월호

Life Story

짧은 가을을 천천히 느리게 보내는 법

절기상으로 가을이 막바지다. 대지를 붉고 노랗게 물들였던 절정의 순간은 너무나 짧은 것 같다. 하여 이렇게 떠나는 가을을 보내기 아쉽다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곳으로 가보자. 가을의 낭만과 섬의 운치가 만나는 화성 국화도와 충청 슬로시티 1번지 제천에서 깊어가는 계절을 만끽할 수 있으니.

글/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가을 낭만과 섬의 운치가 조화로운 화성 국화도

국화도는 궁평항에서 뱃길로 40분이면 닿는 작은 섬이다. 주민이 60여 명 남짓인 이곳은 조선시대에 유배지였다. 만화리에 속해 만화도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에 국화리가 되면서 섬 이름이 바뀌었다. 섬 둘레는 3km가 채 되지 않아 천천히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섬에 첫발을 디디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이 병아리처럼 샛노란 국화도 등대인데 국화도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이 등대는 서해의 푸른빛과 잘 어울려 포토존으로 인기다. 선착장 대합실에는 이곳을 다녀갔던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이 사진으로도 남아 있다.

항구를 지나 마을에 들면 소박한 어촌의 모습이 정겨워 마음까지 푸근해진다. 바쁜 도시의 삶과는 다르게 섬의 일상은 천천히 흘러간다. 따스한 가을볕 아래 잠에 빠져든 고양이와 담벼락 아래 흔들리는 들꽃, 텃밭을 가꾸는 주민들의 손길 등 가을빛 아래 모든 것이 여유롭다. 그래서 섬 완주라는 거창한 목표 대신 발길 닿는 대로 유유자적 걸어보는 것도 좋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을 지나 북쪽으로 향하면 국화도 해수욕장이 있다. 갯바위 사이로 펼쳐진 작은 해변은 경사가 심하지 않고 바닥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일 만큼 물도 맑다. 여기 풍경의 하이라이트는 해수욕장 왼편에 있는 매박섬. 소나무로 덮여 있는 매박섬은 썰물 때 국화도와 연결돼 건너갈 수 있는데 조개껍데기로 이루어진 조개무덤이 있을 만큼 조개가 흔하다.


방방곡곡 방방곡곡

매박섬을 지나 섬의 왼편으로 계속 걷다 보면 물이 빠진 너른 갯벌이 나타난다. 어장 매표소에서 체험비를 내면 바지락과 게, 소라, 굴 등 갯벌 체험도 가능하다. 진득한 갯벌이 아니라 돌밭이어서 운동화를 신고도 체험할 수 있다. 갯벌 끝에서 500m쯤 걸어가면 국화도와 나란히 서 있는 무인도 토끼섬이 나온다. 이곳도 매박섬처럼 물이 빠지면 오갈 수 있고 가는 바닷길 주변에는 고동을 비롯한 각종 조개류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 호미 하나 들면 망태기를 가득 채울 수 있다고 한다.

국화도에서 나지막한 언덕 너머 섬 서쪽으로 가면 국화도 선착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이후부터는 마주하는 풍경이 사뭇 다른데 동쪽 해안에 갯바위와 자갈이 많았다면 서쪽엔 조개껍데기와 모래가 적당히 어우러져 천혜의 해수욕장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걷다 쉬며 섬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어느덧 해거름이다. 일교차가 큰 가을철에 보는 일몰, 특히나 섬에서 만나는 일몰이라면 환상적일 터.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국화도에서 짧지만 긴 하루를 마감하기에 충분히 낭만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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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 국화리 어촌체험마을 : 031-356-9940

느린 걸음으로 다니기 좋은 충청권 슬로시티 1호 제천

제천시 수산면은 충청권에서 처음으로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청풍호의 넉넉한 물과 금수산, 가은산, 옥순봉으로 이어지는 울창한 산림이 슬로시티 수산면의 자랑이다. 수산(水山)이라는 이름도 물(水)과 산(山)에서 따왔다. 청풍호는 1985년 충주댐을 건설하며 생겨난 인공호수로 ‘내륙의 바다’라 불릴 만큼 규모가 커 제천시와 충주시, 단양군에 걸쳐 있다.

이런 충주댐 덕에 아름다운 청풍호가 태어났지만 고향이 수몰돼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들이 새롭게 보금자리 삼은 곳이 수산면 산야초마을이다. 예부터 이곳은 약초 주산지로 유명했다. 게다가 금수산이 병풍처럼 드리우고 남한강이 유유히 흘러들어 풍광 또한 빼어났다. 이 산야초마을에서는 우리나라 약초의 종류와 효능, 약초 구별법 등을 알려줘 약초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으며 약초를 이용한 비누 만들기, 손수건 염색 등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슬로시티다운 풍광을 즐기고 싶다면 자연의 숨결 따라 느리게 걷는 청풍호 자드락길을 걸어보자. 자드락길이란 ‘산기슭 비탈진 곳에 난 오솔길’을 뜻한다. 수산면에 속한 코스는 6코스 괴곡성벽길이다. 괴곡리에 있는 옥순봉쉼터에서 출발해 다불리를 거쳐 지곡리까지 갔다가 괴곡마을에서 마무리하면 된다. 총길이는 9.9km로 완주하려면 반나절을 잡아야 한다. 시간 여유가 없다면 다불리까지 갔다가 되돌아와도 괜찮다. 여유롭게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니. 그래도 아쉽지 않은 이유는 이 구간에서 보는 전망이 으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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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은 수산면과 함께 박달재가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박달재에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데 입신양명의 꿈에 부푼 선비 박달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던 중 박달재 아랫마을에서 하룻밤 머무르며 금봉이라는 처녀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며칠을 여기서 지내다 날짜가 임박하자 박달은 장원급제해서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났지만 몇 날이 지나도 무소식이었다. 기다리다 못한 금봉은 숨을 거두고 뒤늦게 달려온 박달 또한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금봉의 환영을 잡으려다 변을 당한 것. 이때부터 이 고개를 박달재라 부른다. 이 안타까운 사연은 트로트 ‘울고 넘는 박달재’를 통해 들을 수 있는데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로 시작하는 이 노랫말은 박달재조각공원 곳곳에 조각품으로 표현돼 있다. 만추의 계절인 지금 제천 슬로시티에서 느리게 사는 맛을 제대로 즐겨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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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 제천시 관광정보센터 043-641-6731


댓글 10

  • 최인혁님

    이번 글을 보니 아름다운 자연과 명소들을 한가득 만날 수 있는 국화도, 제천으로 여행가고 싶어지네요 ^^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김윤희님

    우리나라 구석구석 가볼 곳이 많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이준범님

    국화도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네요. 낙조 보러 궁평항에 가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국화도도 가보면 좋겠습니다

  • 삼천리곡곡님

    이런 섬도 있었네요. 시간내서 가보고 싶은 낭만적인 섬인듯요.

  • 송민주님

    박달재에 저런 사연이 있었는지 몰랐어요! 사연을 읽고 보니,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 되어 버렸어요~
    국화도도 궁금해진 관광지가 되었네요.
    덕분에 전국에 멋진 관광지, 알아가게 되어 감사해요~

  • 박순화님

    ‘짧은 가을을 천천히 느리게 보내는 법’에서 화성 국화도, 슬로시티 1호 제천의 대표 여행지를 보면서, 혼자 훌쩍 떠나는 것도 좋지만, 소중한 이들과 함께라면 여행은 더욱더 즐거워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드네요. 눈의 즐거움과 마음의 충만함까지 느낄 수 있는 가을 여행지였습니다.

  • 김영선님

    이번 느릿느릿 여행지 너무 좋습니다 :)

  • 김태현님

    천천히 주변을 보는 즐거움, 멀리 안 가도 좋죠

  • 연정아님

    대한민국 작은 땅덩어리라고 하는데 틀린 말 같아요~~~
    아름다운 곳들, 볼거리가 너무 많은 나라인거 같아요~~~
    4계절이 있어서, 언제 아름다운 대한민국~~~
    오늘도 좋은 명소 잘 보고 갑니다.

  • 도사랑님

    화성과 제천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니 가족과 함께 가보고 싶어지네요. 요즘 힐링이 필요했는데 좋은 스팟 소개해주셔서 유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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