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Together Vol. 107  2021.2월호

Life Story

그때 그 시절의 추억 소환
설날 랜선 여행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설날이 되면 정겨운 동요가 떠오른다. 당연한 듯 여겨졌던 모든 일상이 특별해진 요즘엔 설날의 풍경 또한 달라졌다. 예전 같으면 고향으로 달려갔겠지만 코로나19 탓에 쉽지 않다. 이에 푸근한 고향을 닮은 곳, 어릴 적 동심을 소환하는 곳으로 랜선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언젠가 꼭 가볼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글 / 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마음속 고향을 닮은 ‘아산 외암민속마을

봉긋한 초가지붕에 새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았다. 기와지붕의 부드러운 선 역시 솜이불을 덮은 듯 우아한 곡선미를 선보인다. 설화산을 등에 업고 끊어질 듯 이어진 실개천이 마을을 감싸고 돈다. 아산 외암민속마을에 눈이 내리면 동화 속 세상이 펼쳐지는데 예전 연하장에 그려져 있던 눈 오는 고향마을의 모습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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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민속마을은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된 마을로 약 500년 전부터 예안 이 씨 일가가 모여 살고 있다. 전국의 민속마을 중 아름답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부터 심상찮다. 입구 매표소를 지나면 개천이 흐르고 다리를 건너면 무려 50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다리 하나 건넜을 뿐인데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는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하다.

민속마을은 오른쪽 고샅길을 따라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관광객을 위한 박제화된 민속마을이 아니라 실제로 수백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사는 삶의 터전이다. 마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돌담장이다. 한국의 여느 시골동네에서 돌담길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장장 5km가 넘는 고불고불한 미로처럼 이어진 돌담길은 드물다. 담장은 어른 가슴 높이로 안팎의 사람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넬 수 있을 만큼 소담하다. 돌담길을 따라 마을로 접어들면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이어지는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듯 갓을 쓴 할아버지가 “에헴” 헛기침을 하고 담장 너머에선 선비의 책 읽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방방곡곡 방방곡곡

500년 전에는 양반과 평민이 구분되어 살았지만 지금은 10여 채의 반가와 초가가 서로 어우러져 그림처럼 조화롭게 자리해 있다. 기와집은 참판댁, 종손댁, 송화댁, 참봉댁, 교수댁, 건재고택 등 100~200년 정도 된 집들이다. 택호는 주로 관직에서 따온 것이 많은데 송화군수를 지냈다고 하여 송화댁, 참봉이나 벼슬을 하였다고 해 참판댁 혹은 참봉댁, 주인이 성균관 교수를 지내서 교수댁이라 부른다.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을 만끽하는 방법이 또 있다. 첫째는 뜨끈한 아랫목에서 가족끼리 군고구마를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고 둘째는 마을주민이 직접 내놓는 시골밥상을 맛보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당장 달려갈 수는 없겠지만 마음속에 고향의 온정만은 꺼지지 않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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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방방곡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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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여행의 보고 ‘강경근대문화역사거리

논산의 소읍 강경은 한때 충남과 호남에서 가장 번성했던 물류의 중심지였다. 구한말 강경시장은 평양시장·대구시장과 더불어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렸다. 금강과 인접한 포구가 강경 발전의 견인차 구실을 한 셈이다. 장날에는 하루 100여 척 이상의 배가 드나들었다고 하니 그 영광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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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기지를 물색하던 일본 상인들 눈에도 강경은 특별했다. 1896년에 일본상인 1명이 강경에 발을 디딘 이후 숫자가 급속하게 늘어나 1928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이 1,579명에 이르렀다. 일본인들은 주로 강경시내 중심가에 터를 잡고 생활했다. 일본인들이 점차 늘어나자 강경은 충청남도에서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오고 호남지방에서 가장 먼저 현대식 극장이 문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1931년 장항선이 개통되면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더는 금강으로 수산물을 싣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발 빠른 기차가 대신했다. 게다가 금강하구둑이 1990년에 완공된 이후부터는 그나마 금강을 오가며 명맥을 지켜오던 뱃길마저 끊기며 강경은 급격히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대신 강경젓갈만은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도시의 쇠락은 또 다른 결과를 낳았다. 강경의 시간이 멈춰버린 것이다. 젓갈가게를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아직 일제강점기와 1960년대에 이전에 머물러 있다. 덕분에 근대문화역사거리로 다시 태어나 그때 그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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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거리는 아련한 향수를 주는 아날로그 느낌이 가득하다. 근대문화역사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옛 건물은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 건물이다. 한일은행은 1906년 하급관료 출신의 실업인과 중소지주 출신 인사들이 세운 민족은행이다. 1911년에 강경에 지점이 설치됐고 지금의 건물은 1913년에 지은 것이다. 당시로는 가장 큰 규모로서 최고의 시설을 갖춘 민족은행이었다. 강경의 번영을 짐작할 수 있는 옛 노동조합은 문화안내소로 사용 중이다. 당시 조합원이 2~3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옛 남일당 한약방은 ‘남쪽에서 제일 큰 한약방’이란 뜻으로 1920년대까지만 해도 충남과 호남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또 강경상업고등학교에는 1931년에 교장 사택으로 지은 근대건축물이 자리해 있는데 한국적 건축미와 일본식 건축양식이 혼합돼 특이하다. 그리고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은 1937년에 지어진 것으로 강경읍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근대식 교육기관이다. 그때 그 시절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강경. 당장 떠날 수는 없지만 과거를 소환한 듯한 모습에 랜선으로나마 잠시 마음이 따뜻해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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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방방곡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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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 이준범님

    눈이 내린 외암인속마을의 풍경이 멋지네요.
    한옥과 눈의 조화는 참 멋지고 좋네요.

  • 전승호님

    외암민속마을과 강경으로 랜선여행 행복합니다.

  • 채봉균님

    어린 시절 살던 시골 동네의 정취가 느껴지는 사진입니다.
    잠시 마음의 여유 첮아갑니다

  • 고승조님

    코로나로 인해 설날 이동이 제한되어 집에만 있었는데.. 사진으로 보는 풍경 때문에 더더욱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모두들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여행갈수 있는 그날까지 파이팅!!

  • 김지환님

    코로나만 아니면 당장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곳이네요. 언젠간 꼭 가봐야겠어요

  • 김태현님

    소담스럽게 쌓인 눈 풍경이 멋져요. 예전 생각에 잠기게 하네요

  • 곽정호님

    모두 가보지 못한곳이네요. 시간날때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 임정연님

    눈 내린 풍경많으로도 여행갔다온 느낌을 느낄수 있어 너무 좋네요.  코로나19가 끝나고 여행갈수 있는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 구희영님

    고즈넉한 풍경이 보고 있어도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것 같아요

  • 안준한님

    고향의 모습과 정겨움이 생각나는 외암마을이네요!

  • 이종수님

    전통과 예것과 아날로그가 이렇게 감성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지 새삼 느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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