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Together Vol. 106  2021.1월호

Life Story

설국으로의 은빛 초대
심설산행

함박눈이 내렸다. 메마르고 볼품없던 대지가 천지개벽한 듯 달라졌다. 온 세상이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듯 눈부시다.
이에 축복처럼 내린 설원을 만끽하고 싶다면 이런 모습은 어떨까? 오롯이 겨울왕국에 감격하고 감탄하는 곳
심설산행의 성지를 온라인에서 즐겨보자.

글 / 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심설산행의 하이라이트 ‘평창 선자령’

강원도 평창에 자리한 선자령은 백두대간의 주 능선에 우뚝 솟아 있는 산으로 오른쪽에 푸른 동해를 끼고 백두대간의 등뼈를 거슬러 가듯 구불구불 이어져 있는 능선이 압권이다. 동해에서 백두대간 넘어 불어오는 위력적인 바람을 이용한 풍력발전기도 점점이 놓여있다. 사계절 언제나 장쾌한 풍경을 뽐내지만 선자령의 겨울은 더욱 특별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흰눈이 소복하게 내린 다음날이면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린 심설산행 마니아들이 약속이나 한 듯 나타날 정도다. 드넓은 선자령에 아찔하게 펼쳐진 설원을 한시라도 빨리 보기 위해서다.

험준한 백두대간 능선에 오른다니 저질체력이라 걱정부터 앞선다면 안심해도 된다. 선자령 심설산행코스는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지 않으니까 말이다. 산행기점인 구 대관령휴게소가 해발 840m에 있고 선자령까지는 6km 거리다. 게다가 등산로가 평탄해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다. 심설산행에 꼭 필요한 장비와 왕복 4시간 정도 산행할 체력만 있다면 누구든 도전할 수 있다.
방방곡곡 방방곡곡

은빛 실크로드 대장정의 길을 가다

대관령휴게소에서 출발해 앞사람이 밟아놓은 길을 따라 한발 한발 전진해본다. 선자령으로 오르는 길은 두 가지인데 KT송신소를 지나가는 윗코스와 대관령 양떼목장을 지나가는 아랫코스이다. 아랫코스로 먼저 향한다. 양떼목장은 드넓은 구릉지에 양떼를 방목하는 곳으로 알프스를 연상시키는 나지막한 언덕이 사계절 초원으로 덮여있다. 눈이 내리면 언덕 전체가 눈부신 겨울왕국으로 변하는데 양떼목장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면 침엽수림 사이로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도 쉼 없이 만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디선가 얼음 아래로 졸졸거리며 흐르는 계곡물 소리도 들린다.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푸른 하늘이 열리고 능선 위로 올라선다. 뒤를 돌아보니 실크로드의 거대한 이동이 연상된다. 드디어 선자령 정상에 도착했다. 북쪽으로 곤신봉과 매봉이, 서북쪽으로는 황매산이 자리하고 있다. 백두대간 표지석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고 그 뒤로 동해가 신기루처럼 아른거린다. 탁 트인 시야만큼 가슴도 시원하다. 동해의 찬바람이 일상에 눌려 무심히 잠든 가슴을 휘몰아쳐 깨운다. 동쪽에는 시퍼런 동해가 펼쳐져 탁 트여 있다. 수직으로 하강하면 강릉까지 다다를 기세다.

정상을 뒤로하고 방향을 돌려 발걸음을 재촉하기로 한다. 엄청난 크기의 풍차가 여기저기서 윙윙거리며 세차게 돌아간다. 먼발치에서 보면 풍차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지만 가까이 가보면 크기에 압도당할 정도다. 설원 위로 거인의 바람개비처럼 산 능선마다 풍차가 돌아가고 있다. 은빛 설원과 거대한 바람개비. 그 속에서 걷다 보니 일상의 일희일비한 일들이 사소하게만 느껴진다. 정상에 서서 탁 트인 설원을 봐서 일까?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다. 도심에서 알게 모르게 때 묻은 마음이 눈밭처럼 새하얗게 변한 듯하다.

방방곡곡 방방곡곡

곤도라 타고 단숨에 눈꽃세상으로 ‘무주 덕유산’

덕유산은 남한에서 4번째로 높은 산이다. 최고봉인 향적봉이 1,614m나 된다. 이렇듯 절대 만만치 않은 산임에도 겨울 심설산행지로 인기를 끈다. 단순히 산의 높이로만 본다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우리에겐 눈꽃세상으로 단숨에 데려다줄 관광곤도라가 있다. 겨울 눈꽃산행을 하고 싶어도 체력이나 많은 장비 때문에 쉽게 길을 떠나지 못했던 낙심자에게 덕유산은 어쩌면 환상 속의 그곳이 아닐까 싶다.

다만 초보산꾼이라면 곤도라 하행 마감시간은 신경 써야 한다. 욕심이 앞서 동선과 일정을 무리하게 짜면 걸어서 하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오르는 향적봉 1코스는 덕유산 리조트에서 곤도라를 타고 설천봉까지 오를 수 있으며 이후 향적봉까지 편도 600m만 오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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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러 떠나보자

곤도라를 타고 얼마쯤 올라갔을까. 아래에서 본 것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덕유산 설천봉의 풍광이 압도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사방으로 거칠 것 없는 전망에 가슴은 감동으로 물결친다. 새파란 하늘과 접한 설원은 맨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눈부시다. 먼발치에 펼쳐진 산맥이 굽이굽이 춤을 추고 발 아래는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이 설원을 질주하듯 내달린다.

설천봉 평지를 지나면 나지막한 오르막이 나오는데 고개에 오르는 순간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태어나서 지금껏 본 눈꽃은 단지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것. 덕유산 환상 눈꽃터널이라 불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나뭇가지에 눈이 내리고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몰아치면 눈은 꽃으로 피어난다. 눈과 바람의 흔적이 가지마다 환상적인 눈꽃을 피워낸다. 바람이 나뭇가지에 생채기를 남기며 잠자던 눈꽃을 깨워 허공으로 날려버리면 눈꽃은 빛을 받아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인다.

이 환상의 눈꽃터널은 웅장하다가도 때로는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변한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작품에 감탄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이 먼발치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는 약 600m 거리인데 걷기에는 무난하지만 강한 바람을 막아줄 구조물은 없다. 오로지 몸으로 바람과 맞서야 하고 전진해야 한다. 그렇게 수십 계단을 올라 드디어 향적봉에 올라서면 겹겹의 산맥들이 발 아래에서 굽이친다. 세상의 중심에 올라선 기분이 이런 걸까? 눈꽃세상의 절정을 맛본 이상 새로운 한 해가 두렵지 않다. 눈과 바람의 시련이 눈꽃을 피워내듯 새해는 지난 노력으로 일궈낼 값진 열매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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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방방곡곡

삼천리 방방곡곡

댓글 17

  • 전승호님

    선자령과 향적봉의 설경과 자연 멋져요!

  • 박재경님

    눈덮인 설산의 모습 정말 아름답네요.
    등반은 힘들겠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풍경입니다.

  • 채봉균님

    코로나때문에 어디 밖에도 못나가는데, 눈호강 하네요. 감사합니다~^^

  • 성현준님

    집콕생활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답답함이 뻥~ 뚫리는, 그야말로 시원상쾌합니다~!!

  • 김현희님

    아.. 작년에 갔던 덕유산의 향적봉과 중봉이 그립네요..
    언제 사진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눈이 많이오는 계절에 특히나 잘갔었던 곳이라 새록새록 합니다~~
    사진보니 정겹네요.

  • 나우희님

    와아 향적봉, 덕유산국립공원 등
    설경이 정말.. 예술이에요~ ^^ 정말 멋있는 것 같아요!
    눈을 바라보는 그 자체는 마음도 뻥 뚫리고~ 여유도 생기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사진 잘 보았습니다!

  • 이수현님

    덕유산 정말 멋지죠~
    전 여름에 다녀왔는데 덕분에 멋진 설산을 구경하고 갑니다!

  • 연정아님

    와우~~설경이 정말로 아름다워요~~~
    도심지에서는 눈이 정말로 싫은 존재이지만, 자연과 만나면 최고인거 같아요~
    멋진 사진들 잘 감상했습니다.

  • 전선우님

    산으로 달려가고 싶네요.~~

  • 최인혁님

    전국 곳곳의 멋진 설산과 설경 사진을 보니 한가득 힐링받는 기분이네요 ^^

  • 전시온님

    화보가 더 어필해 주네요. 삼천리사보를. 집콕하면서 답답한데 속이 뻥 뚫립니다. 멀어서 못갔는데 가본것처럼 기분 좋았습니다. 언젠가는...언젠가는...하면서 못간 곳인데 이렇게 간접적으로나마 다녀올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아...시원해! 역시 삼천리사보, 짱!짱!

  • 김태현님

    겨울 산행은 환경이 예쁘니 보기만 할 뿐, 직접 체험은 위험하더라고요

  • 정광훈님

    코로나 끝나면 가보고 싶은곳이 많아요 ㅜㅠ

  • 김윤희님

    설경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아직 설경으 보며 등산은 못해봤는데 사진으로 보니 가고싶고 대리만족되네요.

  • 김윤경님

    코로나때문에 여행을못가서 너무 아쉬웠는데 선자령의 멋진 모습 기사를 통해 볼수있어서 너무 좋네요^^

  • 지소영님

    겨울설산의 풍경은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특별한게 있는 것 같아요 올해는 못갔지만 사진들 보면서 여행한 것 같은 행복을 잠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이종수님

    선장령에 설산트래킹을 왜 가는지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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