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Together Vol. 111  2021.6월호

People Story

진짜 사나이!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특별한 군생활을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우선 육군과 해군 편이다. 다음달은 공군, 해병대 편으로 이어진다.

글. PR팀&강숙희

육군 편

군생활의 좋은 습관이 지금도 이어집니다
삼천리 인천기술영업팀 손호진 대리

손호진 대리는 훈련량이나 강도 모두 힘들기로 유명한 특공연대 출신이다. 2003년 경기도 포천시 706특공연대에서 FM통신병으로 복무했던 그의 주된 임무는 소대장 옆에서 각 소대와 통신연결을 하며 명령 등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사실 군생활 시작 전에는 통신병이 쉬울 것으로 생각했지만 어떤 환경에서 근무하느냐에 따라 난이도는 다르다는 현실을 군대에 와서야 알게 됐다고 한다.

우선 손 대리가 있던 곳이 특공연대이다 보니 훈련 시 기본적으로 군장이 무거웠다. 게다가 며칠 동안 나가서 훈련을 하다보니 전투식량과 침낭 등은 물론이고 여기에 통신병은 10kg가량 되는 FM무전기를 추가로 들어야 했다. 한 번 훈련하면 산의 7~8부 능선만을 이용해 불빛 없이 밤부터 새벽까지 침투훈련을 하는데 도착해 비트를 구축하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이동거리가 무려 50~100km였다. 이러한 훈련이 1년에 3~4번 있었으며, 여기에 분기별로 진행되는 헬기레펠 훈련도 위험수당이 붙을 정도니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이런 훈련들은 모든 군인이 그렇겠지만 손이 얼고 땅이 어는 혹한기 겨울에도 그대로 진행됐다.

이러한 훈련들을 감당하기 위해선 체력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에 매일 아침마다 전 대원들이 2~10km의 구보를 뛰며 체력 단련을 해야 했는데 당시 불렀던 연대가나 공수가 등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이렇게 고생을 한 덕일까? 손 대리는 군 복무 후에 스스로 철이 들었음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대학교에 적응을 잘 못해 결석이 잦았는데 제대 후에는 재수강을 통해 공부에 매진했고 그 결과 삼천리 입사라는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주 걷고 달리고 산에 오르락내리락 하던 덕인지 지금도 등산이나 마라톤에 취미를 가지고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 군대에서 인생을 바꿀 좋은 습관을 배워 나온 듯하다. 마찬가지로 업무를 할 때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그때의 끈기를 떠올리며 문제해결을 차분히 해나간다고도 전한다. 이 정도 영향을 미친 군생활이 결코 평범하다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손호진 대리에게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 삶에서 보이는 성실함이 지켜보는 이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가족은 나의 힘

해외파병까지 다녀온 터에 모험심도 커졌습니다
삼천리ENG HR지원팀 정진혁 대리

정진혁 대리는 2004년 충남 계룡시에 위치한 203특공여단에서 일반보병으로 복무했다. 정 대리가 속한 부대는 육군이지만 헬기를 타고 공중강습훈련을 하는 부대인 만큼 특별한 체력조건이 돼야만 선발될 수 있었는데 훈련병 때 받은 체력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태권도 단증이 있는 덕에 선발됐다고 한다. 어찌보면 반 자발적 지원이긴 했으나 ‘어차피 할 거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두려움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정 대리의 군생활이 특별해진 건 그 이듬해부터다. 어느 날 정 대리의 귀에 이라크 파병 모집에 대한 소식이 들려온 것. 신중했으나 빠르게 결심을 마친 정 대리는 부모를 설득해 지원에 나섰다. 당시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라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마음 속에는 실제 경험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고 한다. 그리고 2005년 6개월간 자이툰부대 소속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이미 충분한 체력을 단련한 상황임에도 사막 그것도 위험에 노출된 지역이다 보니 방탄복을 입고 총을 항상 휴대하며 낮 온도가 45℃가 넘는 환경에서 근무해야 하는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히려 체력단련의 강도를 높이는 것으로 파병기간을 버텨낸 정 대리는 가히 긍정과 열정의 아이콘이라 할 만하다. 심지어 야간근무를 설 때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며 아름답다는 감상에 더해 별자리관측 책자를 구해 공부하며 무려 50여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인다. 물론 주변에서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하는 등 마음을 졸이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지만 다행히 피해 없이 무사히 복무를 마칠 수 있었다.

그 덕에 심신이 모두 강해진 걸까? 정진혁 대리는 이후 아프리카 해외봉사 등 다방면의 일에 도전하며 모험을 즐겼다. 또 어떠한 업무를 함에 있어서도 지치지 않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려는 끈기와 책임감도 강해진 것 같다고 말한다. 힘들었던 군생활을 떠올리면 세상 어떤 일도 두렵지 않다는 정 대리. 그가 있어 강력한 아군을 얻은 듯 든든하기만 하다.

가족은 나의 힘

해군 편

군대에서도 삼천리에서도 우린 안전 담당
삼천리 용인안전관리팀 박기형 과장 & 기술교육팀 김덕영 대리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는데 군대 인연이 회사로까지 이어진 이들이 있다. 박기형 과장과 김덕영 대리다. 박 과장은 해군 제2함대 사령부 173기(1998~2002), 김 대리는 188기(2002~2006) 부사관으로 복무했다. 박 과장의 복무 끝자락에 김 대리가 초임 하사로 입대했으니 군대에서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낸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인연이 회사로까지 이어지며 또 같은 직무를 연이어 맡으면서 특별한 인연은 깊어졌다.

박기형 과장은 복무 당시 함포, 소병기, 탄약 등을 담당했다. 무기류는 작은 실수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긴장감이 높은 직무다. 김덕영 대리는 보수를 담당했는데 항해 중인 선박이 공격을 받으면 화재를 진압하고 침수를 막으며 내부 장비를 긴급 복구해 선박의 기능을 회복하는 작업을 담당했다. 얼핏 달라 보이지만 사실 두 업무 모두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재 두 사람이 삼천리에서 안전을 책임지는 부서에서 각각 일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들과 안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었나 보다.

한편 태풍이 올 때를 제외하면 늘 항해 상태인 터에 가끔은 집채만한 파도가 덮치는 상황을 목격하기도 했다는 두 사람. 이럴 때면 없던 뱃멀미도 생길 정도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군생활이 힘들기만 한 건 아니었다. 당시엔 육지와 떨어져 오랜 시간 지내는 게 힘들었지만 생각해보면 어디서도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고 그에 따른 추억도 많단다. 특히 백령도 아래 대청도에 정박했을 때 업무 끝내고 짬짬이 동료들과 자연산 해산물을 채취해 먹었던 추억은 최고로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자연산 해산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다 일반인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라 크기도 크고 양도 엄청났다는데 듣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인사이드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지켜낸 NLL

박기형 과장에겐 사실 군생활 중 있었던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있다. 바로 2002년 6월 29일 벌어진 제2연평해전이다. 그 날은 동시에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터키와 3, 4위전을 펼치던 날로 온 국민이 온통 축제 분위기 속에 있던 그 시간, 박기형 과장은 서해 바다 위에 있었다. 제2연평해전은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 부근에서 일어난 남북한 간 군사적 충돌사건으로 북한 해군 경비정이 대한민국 해군 고속정에 기습공격을 시작해 약 30분 가량 교전이 진행되며 양측 모두 큰 손상을 입었다.

동료들이 타고 있던 참수리 357호가 최초 공격을 당했을 때 박 과장이 타고 있던 고속정의 승조원들은 모든 화력을 동원해 북한 경비정에 집중 대응사격을 시작했다. 박 과장은 당시 배 앞으로 떨어지던 거대한 함포 소리와 충격, 동료들이 타고 있던 고속정에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던 폭격 등 그날의 아픔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동기였던 故 조천형 중사에 대한 마음은 아직도 큰 무게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교전이 벌어지기 하루 전 야간에 배고프다며 컵라면 하나 끓여 달라던 조 중사에게 다른 일을 하다 만들어주지 못한 것이 아직까지도 미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김덕영 대리는 대청도에서 연평도로 교대 준비중이었다. 교전이 벌어지던 곳의 한 편대가 그날 평택으로 복귀하던 차였는데 김대리가 있던 편대가 오전에 교대하기 위해 대기하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 역시 죽음을 가르는 현장 속에서 동기 이자 친한 친구였던 부사관 188기 故 박경수 중사를 잃게 되어 한동안 슬픔에서 쉽게 나오지 못했다고 전한다.

박기형 과장은 오랜시간 트라우마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나라의 부름이 있다면 언제든 다시 나설 것이라고 말한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겪은 그들이지만 다시 한번 바다로 나가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다는 의지를 들으니 숙연해진다. 우리 바다를 사수하며 조국을 지키다 장렬히 전사한 전사자들과 그 곁에서 함께했던 모든 이들에게 다시금 존경을 표한다.

가족은 나의 힘

댓글 3

  • 이수연님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특별한 군생활을 했던 이들의 이야기..
    잘 봤어요..
    여러분이 진정한 영웅이죠..
    감사드려요..

  • 김윤희님

    호국보훈의 달 특집답게 직원들의 군생활을 잘 정리하셨네요. 잘 읽고 갑니다.

  • 김태현님

    호국보훈의 달에 맞게 좋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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