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Together Vol. 126  2022.09월호

Life Story

이때를 놓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해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데 신록이 무성한 산야. 단풍을 기다리기에는 아직 먼 9월이 그렇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 9월은 어중간한 시기다. 그렇지만 이때를 놓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이맘때
꼭 가야 할 곳이 있다. 전북 고창과 경기도 연천이 그곳이다.

글/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고혹적 선홍색과 순결한 백색이 조화로운 고창

단풍을 기다리기에는 아직 먼 9월이지만 이맘때 전북 고창 선운산에 가면 단풍보다 더 붉게 불타오르는 선홍색 꽃을 볼 수 있다. 치명적일 만큼 고혹적이며 가느다란 게 한없이 가냘퍼 보이고 여려 보이는 꽃무릇이 그 주인공이다. 꽃무릇은 꽃이 피었다 지고 난 다음에 잎이 자란다. 그래서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해 애틋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꽃말이 ‘슬픈 추억’ ‘이룰 수 없는 사랑’인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가녀린 모습과 달리 뿌리에는 코끼리도 쓰러뜨릴 정도의 강한 독이 있다. 절 주변에 꽃무릇이 많은 이유가 예부터 꽃무릇의 독성을 이용해 단청이나 탱화 보존에 유용하게 썼기 때문이다.

고창 선운사는 우리나라 꽃무릇 3대 성지로 손꼽힐 만큼 꽃무릇이 푸지게 핀다. 선운사 앞 생태숲은 물론이고 선운산 계곡과 깊은 산 속으로 향하는 길섶에도 꽃무릇이 바람에 나부낀다. 선운사 꽃무릇은 9월 초 꽃대가 올라오고 추석 이후 절정을 맞이하는데 만개하면 생태숲 일대가 온통 붉은 비단을 덮어 놓은 듯 화려하다. 통상 개화 후 열흘 정도가 절정기로 알려져 있다.


방방곡곡 방방곡곡

한편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창건됐다고 전해지는 고찰로 대웅전 뒤편 야트막한 동산에 동백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는데 이 또한 볼만하다. 500년 이상 된 선운산 동백은 4월에 절정이다. 그리고 선운산 남쪽 드넓은 구릉지에는 고창 학원농장이 있다. 이곳 역시 여름과 가을을 이어주는 메밀꽃이 화사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작가 이효석은 메밀꽃을 일컬어 ‘달밤에 소금을 뿌려놓은 듯 피어난다’고 했다. 이 얼마나 감성적이며 시적인가. tvN 드라마 <도깨비> 주인공들이 첫키스 장면을 여기서 촬영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 같다.

학원농장은 원래 보리와 콩 농사를 짓던 농장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 봄에는 청보리밭, 가을에는 메밀꽃밭을 가꾸면서 대박을 터트렸다. 특히 메밀꽃이 만발하면 팝콘을 소쿠리채 쏟아놓은 듯한 몽환적 풍경이 펼쳐져 사진작가들에게 인기 있는 출사지로 알려져 있다. 몇 해 전부터는 해바라기꽃밭도 함께 조성하고 있다. 더 좋은 건 곳곳에 풍경에 걸맞게 초가지붕을 얹은 쉼터와 나무의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연인과 가족들을 위한 포토존도 마련돼 있어 추억을 새길 수 있다는 점이다.


방방곡곡 방방곡곡

* 문의 : 선운산도립공원 063-560-8681, 학원농장 063-563-9897

깊은 역사와 천혜의 경관이 만나 그윽해지는 연천

경기도 연천은 휴전선과 가까워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청정지역이다. 수도권에서 1~2시간이면 충분히 닿는데다 급류를 따라 흐르는 시원한 한탄강이 있어 여름 휴가지로 인기인 곳. 가을 문턱 9월에는 노란 함박웃음을 터트린 해바라기가 만개해 더 특별한 여행을 선사한다. 특히 해바라기로 유명한 곳은 고구려 성곽으로 알려진 호로고루. 고구려는 화산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수직 절벽을 이용해 이 성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탄강이 파주와 인접한 이곳에 이르면 임진강으로 바뀌는데 호로고루의 호로는 임진강의 옛 이름이고 고루는 성을 일컫는다고 한다. 남한을 대표하는 고구려 유적지 이곳에는 고구려 역사를 재조명하고 임진강의 역사적 가치를 전하는 홍보관도 있다.

호로고루의 넓은 땅에 봄에는 청보리, 이맘때는 해바라기가 활짝 꽃을 피운다. 성곽 가장 높은 곳에 오르면 선선한 강바람이 온몸을 휘감고 탁 트인 전망이 가슴을 뻥 뚫는다. 특히 성 정상부로 올라가는 계단은 SNS에서 인기 사진스폿으로 알려져 있다. 해바라기는 추석 이후부터 9월 20일 정도까지가 가장 적기인 만큼 서두르는 게 좋다.


방방곡곡 방방곡곡

연천에 SNS에서 인기 있는 포토존이 또 있다. 당포성이라 불리는 곳으로 삼국시대에 축조된 성곽이다. 주변에 천연절벽이 에둘러 천혜의 요새를 보는 듯하다. 당포성 위에 자그마한 전망대가 있고 그 옆에 나무 한 그루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이곳이 바로 포토존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낮은 구릉과 절벽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 당포성 주변에는 해바라기를 비롯해 약한 바람에도 흔들흔들 춤추는 바늘꽃, 노란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황화 코스모스, 솜사탕 모양을 닮은 댑싸리가 가득하니 실컷 꽃구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탄강 물줄기를 따라가면 재인폭포에 이른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지질명소인 이곳은 아우라지 베개용암, 임진강 주상절리 등과 함께 지질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특히 이맘때는 주차장에서 재인폭포까지 가는 산책로에 붉은 천일홍이 만개한다. 꽃송이가 알사탕 크기여서 더욱더 탐스러운 천일홍은 짙은 선홍색을 뽐낸다. 꽃길을 지나면 깎아지른 절벽에 물거품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재인폭포를 마주할 수 있다. 폭포 앞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는 폭포를 가장 정면에서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 그리고 폭포 아래로 내려가면 굉음을 내며 곤두박질치는 웅장한 폭포와 주상절리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꽃으로 화려했던 아름다움 끝에 자리한 시원한 장관을 놓치지 말자.


방방곡곡 방방곡곡

* 문의 : 연천 호로고루 031-839-2565, 연천군청 관광과 031-839-2862


댓글 7

  • taesoo12님

    올가을 단풍여행은 고창으로 정했습니다.

  • 최인혁님

    이번 글을 보니 고창과 연천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어지네요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이혜령님

    사진으로만 봐도 운치있음이 느껴지네요. 마음이 편안해져요 ^_^♡

  • 김봉석님

    연천 호로고루성과 해바라기를 보니 좋은사람과 꼭 여행가보고 싶군요~

  • 연정아님

    너무 아름답네요~~
    꽃무릇 이라는 꽃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네요~~자주 본거 같은데~~
    가을이 시작되니, 여기저기 알록달록 해지면서, 풍경들도 더욱 아름다워지는거 같아요~

  • 김태현님

    꿀벌이 나는 모습이 평화롭게 보여요

  • 배지현님

    고창 선운사와 연천 호로고루 모두 요즘 같은 날씨에 걷기 좋을 것 같아요! 가족과 당일치기 여행으로 꼭 가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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