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 이상기후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

유럽연합 기후변화 감시기구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 중 86일의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인 1850년부터 1900년까지의 평균보다 최소 1.5℃ 높았다. 앞서 2016년과 2020년이 산업화 이전 대비 1.25℃ 높아 가장 더웠던 해로 꼽혔는데 이 기록을 뛰어넘은 것이다. 이는 실제로 모두가 체감한 더위였다. 그럼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내년에도 이렇게 견뎌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나서서 바꿀 수는 없을까? 함께 살펴보자.

글. 동아사이언스 박정연 기자

기후온난화의 원인, 현상 그리고 기록들

전문가들은 기후가 온난해지는 원인으로 ‘엘니뇨 기후 패턴’을 지목했다. 엘니뇨는 중태평양이나 동태평양에서 2~7년 단위로 발생하는 해양온난화 현상인데 바다 깊은 곳에 저장돼 있던 온기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면서 지상의 기후온난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처럼 기온이나 강수량 등의 기후요소가 약 30년 사이 통계적 평년값을 벗어나 현저히 높거나 낮은 수치를 나타내면 이를 ‘이상기후’라 말한다.

이상기후의 대표적인 현상으로는 폭염, 한파, 열대야, 홍수, 폭설, 가뭄 등이 있으며 이러한 현상을 야기하는 요인으로는 앞서 언급한 엘니뇨를 비롯해 라니냐, 기압배치 등도 있다. 이 같은 요인들은 독립적 현상이 아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맞물려 일어나게 된다. 예를 들어 엘니뇨가 일으키는 태평양 해수온도 분포 변화는 상층 기압의 배치를 변화시키는데 이렇게 변화된 배치가 또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이상기후를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세계 각지에선 이상기후의 기준을 충족하는 기록들이 보고됐다. 올해 4~8월만 살펴보더라도 이 기간 동안 관측된 전 세계 기온이 사상 최고치를 나타냈다. 7월 첫째 주 지구 온도는 17.23℃였다. 종전까지의 기록보다 0.9℃ 오르며 기록적인 기온 상승을 보였다. 늦여름이자 초가을인 9월 측정된 전 세계 기온 역시 평년 7월 수준에 가까운 수치를 보이며 역대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 9월은 1991~2020년 9월과 비교했을 때 평균 0.93℃, 2020년 이전 평균과 비교했을 때는 평균 0.5℃ 높았다.

이상기후가 가져온 지구의 각종 재앙들

이상기후가 초래한 것들은 상당했다. 우선 전 세계에서 건조한 환경을 조성하며 각종 재해를 불러일으켰다. 8월 그리스에선 유럽연합 전체 역사를 통틀어 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이 발생했다. 2주 동안 그리스를 덮친 산불이 퍼져 나간 면적은 미국 뉴욕주보다 넓다. 그리스에선 이보다 앞선 7월에도 대형 산불이 연달아 발생했는데 이 시기 발생한 산불로 배출된 이산화탄소 양만 100만t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 중 한 곳인 런던이 2주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과 비슷한 수준이다. 강력한 산불과 폭염이 지속되며 그리스는 인기 관광명소인 아크로폴리스의 관광객 방문을 막는 조치를 취했다. 이탈리아에서도 40℃ 이상의 고온으로 관광객들이 잇따라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열기는 북아프리카에도 영향을 미쳐 알제리, 튀니지 기온이 48℃까지 상승했다.

산불은 하와이 마우이섬에서도 발생했다. 미국 당국에 따르면 이 산불로 388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건조했던 마우이섬은 산불이 번지는 데 적합한 연료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미에서도 대규모 재해가 발생했다. 올해 4월부터 캐나다 전역에 화마를 일으킨 산불은 15만 6천㎢의 토지를 태웠다. 놀랍게도 이 산불은 가을이 시작된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이상기후의 영향은 아시아권 국가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7월 중국과 필리핀에는 기록적인 폭우와 맹렬한 태풍이 도시와 해안을 덮쳤다. 최대 시속 240km로 측정된 태풍 독수리가 일으킨 경제적 손실은 150억 달러(약 2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베이징에선 기록적인 비가 내리며 도로와 다리, 건설 현장 등에서 붕괴사고가 잇따랐다. 필리핀에선 보트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에서도 올 여름 극심한 폭우로 오송 지하차도가 침수되며 14명이 사망하고 9명이 다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경제와 건강 그리고 범죄에까지 미치는 영향력

이상기후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비단 물리적인 피해뿐만이 아니다. 이상기후는 사회적 환경에 다각적으로 작용하며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대표적 현상이 ‘기후플레이션’이다. 기후플레이션은 기후와 고물가를 뜻하는 영단어인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기후변화로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뜻한다. 쌀, 기름, 커피, 설탕 등 각종 식품 재배에 어려움이 발생하며 가격이 치솟는 것이다. 비가 계속 내리면 일조량이 줄어 수확량 자체가 감소하고 습기 때문에 쉽게 짓무르게 돼 보관과 유통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채소와 과일의 경우 밭이 침수되면 뿌리가 썩고 잎이 짓물러 재배에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가격 변동 폭이 더 커진다. 실제로 지난해 유럽중앙은행은 이상기후로 전 세계 장바구니 물가 상승률이 전년 대비 9.67%p 상승했다고 밝혔다. 전쟁이나 다른 요인을 배제하고 기후적 요인만을 반영한 분석이다. 게다가 2045년에는 이상기후로 인해 세계 식품 물가 상승률이 3.0%p 높아질 것이라 예측했다.

이상기후는 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의학 학술지 유럽호흡기학회지에 9월 게재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폐렴, 천식, 만성폐쇄성질환(COPD) 등 호흡기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폭염, 산불, 홍수 등에 의해 질환이 악화됐다. 서울성모병원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폭염이 닥칠 경우 폭염이 아닐 때와 비교해 당뇨병 환자의 사망 위험도 1.18배 높아진다.

이상기후는 우리 삶의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작용하기도 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주변 온도가 1~2℃ 상승할 때 폭력범죄는 3~5% 증가한다. 이에 2029년까지 폭염으로 전 세계 모든 범죄율이 최대 5%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역시 지난해 미국의사협회지에 실린 연구 결과에 의하면 따뜻한 기온은 신경계에서 신체 스트레스 호르몬을 증가시켜 폭력적인 충동을 고조시킬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밖에도 이상기후는 비행기의 난기류를 증가시켜 하늘길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실제 지난 40년 동안 기후온난화로 대기의 온도 패턴이 바뀌면서 맑은 하늘에서 발생하는 심한 난기류가 50% 이상 증가했다.

무엇보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가장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곳은 다름 아닌 지구 생태계다. 영국 리즈대 연구팀이 10월 13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90~2021년에 남극 주변의 빙붕 162개 중 71개의 부피가 감소했으며 이로 인해 7조 5천억t의 녹은 물이 바다로 방류됐다. 이로써 남극에 거주하는 수많은 동물들이 보금자리를 잃었으며 방류된 물은 해양 생태게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전 지구적 노력에 앞서 개인의 변화가 우선

올해 더위를 통해 직접적으로 기후변화를 실감한 이들은 공포를 느꼈을 수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전 지구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여름 캐나다지질자원조사국의 탄소중립(넷제로) 전문가 오미드 아다카니 박사는 “많은 과학자와 국제기구가 다양한 방식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는데 사실 이상기후에 대한 대응은 우리 삶의 매우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적게 먹고, 적게 사용하고, 적게 버리는 일상 속 작은 습관이 이상기후의 공격을 받는 지구를 지키는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기후변화는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에서부터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현재 이상기후의 직접적 영향권 아래 있다. 나부터 노력을 해야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 이 기사는 기고자의 견해로 삼천리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삼천리 Together Vol. 140 2023.11월호

전 세계적 이상기후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

기후온난화의 원인, 현상 그리고 기록들

이상기후가 가져온 지구의 각종 재앙들

경제와 건강 그리고 범죄에까지 미치는 영향력

전 지구적 노력에 앞서 개인의 변화가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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