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Together Vol. 112  2021.7월호

People Story

진짜 사나이! season 2

지난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특별한 군생활을 했던 이들의 이야기 소개가 7월로도 이어졌다.
이번엔 해병대, 공군, 카투사 편이다.

글. PR팀&강숙희

해병대 편

최고로 힘들고 꽤나 즐거웠던 기억
삼천리 서남안전관리팀 이만수 대리

“기왕 갈 거면 훈련이 고되더라도 확실히 해보고 나오자.” 아마 해병대 출신들에게 이와 비슷한 말을 들은 이들이 꽤나 될 것이다. 이만수 대리 역시 같은 마음으로 해병대에 지원했고 861기로 입대했다. 해병대에겐 상륙기습훈련이 대표적인데 적지에 은밀하게 침투해 정찰 및 감시 작전을 펼치며 주요 시설을 파괴하거나 소탕하는 훈련이다. 강도도 강도지만 훈련기간도 긴 편이어서 힘든 정도는 말도 못할 지경이란다. 대부분의 군인들이 힘들어하는 유격훈련보다도 몇 배 더 힘들다고 말할 정도니 정말 말 다한 게 아닐까 싶다.

이 외에 해병대 훈련 중에는 일반인들이 잘 아는 것도 있다. 유명한 고무보트 들기. 일반인들이 해병대 체험에서 경험하는 대표적 훈련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인데 고무보트라니 가벼울 것 같지만 사실 무게가 무려 100kg이 넘거나 경우에 따라선 150kg이 넘는 것도 있다. 이걸 5~7명이 나눠 지는 것이다. 게다가 그냥 들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들고 밥까지 먹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실제 정수리를 다치거나 목이 삐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니 생각만 해도 고통을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이를 이만수 대리는 “머리가 뭉개지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그런 힘든 와중에도 즐거운 기억이 있다니 궁금하다. 해병대에선 중대본부별 체력 3종 경기를 1년에 한 번씩 시행하는데 어릴 적 수영선수 경력이 있던 덕에 3개 종목 중 수영에서 큰 점수를 따며 결국 포상휴가까지 받아냈다고 자랑한다. 그리고 이 수영실력은 이후에도 여러 좋은 일들을 만들어냈다. 대학 때는 수영강사 자격증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고 삼천리에 입사해서는 직원들에게 우연한 기회에 주마다 1~2회씩 수영강습을 하면서 친해지는 계기도 만들었다고 하니 말이다.

지금은 모두 추억이 된 힘들고 즐거웠던 기억들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추억을 되새기며 산다고 하는데 사실 이만수 대리는 그 추억을 후임들과 나누며 살고 있다. 놀라지 마시라. 서남안전관리팀에는 이만수 대리 외에도 해병대 출신이 3명 더 있다고 한다. 이에 지금은 그들과 이런 추억을 가끔 나누며 웃는단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던 건 아니어도 서로 교감할 수 있는 동료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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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이 진심을 거쳐 소신이 되기까지
삼천리 서남안전관리팀 박병준 사원

앞서 언급한 서남안전관리팀의 또 다른 해병대 출신을 소개한다. 해병대 1041기로 입대한 박병준 사원이다. 박 사원 역시 지원동기는 이만수 대리와 비슷하며 그만큼 각오가 남달랐기에 힘든 훈련도 버텨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해병대는 빨간 모자를 쓴 무서운 목소리의 교관의 모습도 유명한데 실제로 그들은 진짜 무서운 존재란다. 우선 정신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늘 초긴장 상태를 만들기 때문에 멘탈이 나가지 않도록 스스로 끊임없이 정신을 가다듬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상태는 기본. 진짜 극도의 더 힘든 순간이 있다. 훈련 7주 중 극기주라는 시기다. 이때는 1주일 동안 배급되는 식사량이 절반 이상 줄어들며 새벽에 사이렌이 울려 잠을 깨운 후 얼차려를 시킨다. 그로 인해 체력은 물론 정신은 피폐해지고 극도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그걸 하루 하루 버티고 나면 그냥 밥이 정량으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단다. 이후 얻게 되는 건 동기애와 더불어 스스로에 대한 감동과 쾌감. 그래선지 동기들과 헤어질 때 눈물이 쏟아질 정도라고 한다. 해병대 출신들이 사회에서도 친목을 다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훈련이 힘든 만큼 두터워지는 전우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극한 상황은 사실 사회생활에서는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닐 터다. 하지만 박병준 사원은 받았던 훈련 중 현재의 업무에 도움되는 게 있다고 말한다. 바로 공수훈련이다. 비행기나 헬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강하해 적진에 침투하거나 강하 직후 바로 육지에서 전략을 전개하는 것인데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이 낙하산을 포장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조금만 잘못돼도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검사과정만 무려 11단계를 거치며 책임감을 부여하기 위해 작업자의 서명까지 넣는단다. 또한 “강하 직전까지의 모든 안전점검과 강하 후 하늘에서 약속된 지침과 행동은 목숨과 뒤바뀔 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업무와 연결된다는 걸까? 박 사원이 일하는 곳이 안전관리팀인 만큼 안전에 대한 마인드가 매우 중요한데 실제로 작은 실수나 소홀함이 안전과 직결될 수 있다는 생각과 습관이 깊게 자리 잡혀 있다고 한다. 바로 이러한 안전에 대한 각별한 소신이 군에서부터 두터워진 것 같다는 추측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의 이 소신이 군대에서 만들어졌다지만 그 경험은 스스로 선택한 데서 시작했다. 결국 자신의 선택과 의지가 그 중심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칭찬하고 싶다. 그 선택을 결심한 박병준을 그리고 그 초심을 잃지 않은 지금의 박병준 사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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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편

군생활은 내 인생의 중요한 밑거름
삼천리 PR팀 김승갑 대리

김승갑 대리는 2009년 4월에 경남 사천 제3훈련비행단에서 복무를 시작했다. 이 비행단은 국산훈련기인 프로펠러 비행기 KT-1으로 조종사를 양성하는 것이 임무였는데 여기서 김승갑 대리는 비행기 정비점검을 수행하는 부품정비대대에서 정비행정을 관리하는 운영통제병으로 있었다. 공군에겐 당연히 비행기 그리고 조종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조종사의 길로 가는 첫 관문인 훈련비행단은 그 중요한 예비조종사를 길러내는 곳이기에 그들이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도록 항상 비행기를 완벽하게 정비하고 든든하게 지원하는 일을 했다는 사실이 보람찬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주요 보직 외에도 김승갑 대리는 또 다른 역할을 하나 더 맡았다. 바로 명예기자단으로 활동한 것이다. 각 대대에서 모인 기자들이 자신의 대대에서 있었던 특별한 소식이나 소개하고 싶은 글을 작성해 한 달에 한 번 부대 인트라넷에 웹신문으로 발간하는 활동이었는데 주 업무 외에 따로 시간을 내서 하는 것이라 수고가 더 들었음에도 나름 활력소가 됐다고 말한다. 아무리 보람찬 일이라 하고 활력소였다고 해도 그만큼 군생활이 힘들었기에 사소한 것조차 행복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 짠한 마음이다.

그런데 사실 진짜 힘든 일은 엉뚱한 데서 터졌다. 복무기간 중 갑자기 신종플루가 대유행이 된 것이다. 집단생활을 하는 곳이니 휴가를 나갔다 한 사람이라도 감염돼오면 큰일이기에 전 장병의 휴가와 외출이 몇 달 동안 제한됐다. 안 그래도 사회와 격리된 힘든 생활 속에서 더 엄격한 통제라니. 게다가 일상생활은 물론 잠잘 때도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그조차도 지금의 코로나19를 견디는 예방주사였다는 말로 긍정의 힘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 긍정의 마인드는 지금의 조직생활에도 적용되고 있다.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군대에서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덜 힘들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시종일관 군대에서의 힘든 추억을 오히려 보람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그래서 지금 있는 자리에서도 뭐든 다 버텨낼 수 있다고 말하는 김승갑 대리. “살면서 처음 해보는 사회생활이었다는 점에서 군대생활은 인생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라는 마지막 말까지 들으니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지금의 상황을 얼마나 만족으로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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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한 공군부대 체험기
삼천리 회계팀 박종민 대리

역시나 공군 출신인 박종민 대리는 2008년 7월 입대해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제30방공관제단에서 복무했다. 이곳은 최전방에 배치된 레이더장비로 적군기의 출몰에 대비하는 방공관제 임무를 하는 곳인데 작은 부대라 행정병으로 복무하면서 사실은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해야 했다. 특히 당시 동료들이 방공관제에 잡히는 수많은 비행기의 궤적을 보는 업무를 맡게되어 가까이서 업무를 지켜보았는데 얼핏 생각하면 쉬워 보여도 막상 옆에서 지켜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꼈게 됐다고. 언제 적기가 출몰할지 몰라 만반의 경계태세를 갖춘 채 레이더에 찍히는 무수히 많은 점들을 항상 응시하고 있어야 하니 말이다. 그는 군경험을 통해 숨은 곳에서 노력하는 이들의 노고가 결국 우리 나라 안보를 지킨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늘 그렇듯 군대는 일반인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데서 위기를 경험하게 한다. 박종민 대리가 겪은 의외의 위기는 바로 눈이었다. 대부분의 공군비행단이 도시 주변에 있는데 하필 이곳은 해발고도 1,500m에 위치해 있어 항상 구름이 아래로 보였단다. 당연히 제설차가 올라올 수 없는데다 눈이 여름 빼고는 내내 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삽과 넉가래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만 겨우 파내는 일도 버거울 정도였다. 길은 또 얼마나 험한지 정상에서 아래까지 내려가는 데만 꼬박 2시간이 걸린단다. 그러니 그 시간 귀한 휴가 때조차 부대 정문을 나서면 우선 2시간을 산을 내려가는 데 써야 했고 심지어 눈이 오는 날에는 내려가면서 눈을 치우거나 바닥의 얼음을 깨고 가야 했기에 여정은 험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처음 배치됐을 때는 생활관을 신축한다고 해서 70년대에 지은 허름한 건물에서 한동안 정말 힘들게 살아야 했고 보이는 건 온통 산과 하늘뿐이라 외로운데다 저 멀리로는 철원과 북녘땅이 보일 정도였으니 고립감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군생활이 그냥 힘든 기억만 안겨준 건 아니란다. 위기를 버틴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은 역시나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으니 말이다. “모든 군인들은 힘든 만큼 자신감과 열정이라는 선물을 받고 나오는 것 같아요. 덕분에 저도 그때 얻은 에너지로 회사생활을 더 잘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박종민 대리의 말을 들으니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기억들은 지나고 나면 무용담이 되고 그 사연이 깊을수록 깊은 내공이 쌓여 빛을 발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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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 편

다양한 경험과 배움으로
삼천리 재무팀 최거상 대리

KATUSA(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는 주한미군에 증원 배속된 대한민국 육군이다. 카투사의 역사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한국군과 미군의 긴밀한 소통이 필요해 이승만 대통령-미국 맥아더 장군의 협의로 창설됐다. 군 복무를 미군들과 함께하기에 언어능력도 향상되고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도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희망하는 곳이기도 하다. 단 TOEIC 780점 등 어학점수를 일정 기준 넘어야 하며 그중에서도 무작위로 추첨해 선발하기 때문에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

바로 이렇게 실력은 물론 운까지 탁월했던 이가 삼천리에도 있다. 최거상 대리다. 최 대리의 군생활을 잠시 소개하자면 2012년부터 동두천에 위치한 미2사단 캠프 CASEY에서 복무했는데 육군 소속이기에 먼저 신병 훈련소에서 5주간 훈련을 받고 미군 신병훈련소에서 추가로 3주를 훈련받은 후 자대로 배치됐다. 행정병이어서 평소에는 미군들과 같이 행정 업무를 하다가 2주에서 한 달 정도 소요되는 정기훈련에 기관총 사수로 참여하곤 했다.

앞서도 언급했듯 카투사의 장점 중 하나는 영어실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인데 자격 요건인 영어 시험의 커트라인을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업무를 영어로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환경을 무시할 수 없는 법. 하루 종일 영어를 듣고 전화나 문서 등 모든 작업을 영어로 해나가니 자연스럽게 실력이 늘었다고 한다. 제대 직후에는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오기도 했는데 당시 한국에 있다가 본토로 돌아간 미군들을 만나 함께 여행도 하면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고 덧붙인다.

그렇다고 군생활이 아름다운 것만은 당연히 아니었다. 문제는 의외로 아주 가까운 데 있었다. 우선 식사시간. 미군을 위해 현지에서 좋은 식재료들이 공수돼 오지만 닭다리나 매쉬포테이토 등 미국식 식재료와 요리가 대부분으로 개인적으로 김치나 고추장 등을 따로 챙겨서 먹어야 했기에 어려운 점도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진짜 힘들었던 건 사실 언어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미군과 한국 카투사들끼리 갈등이었다. 물론 그런 과정을 잘 극복해냈기에 결과적으로는 삶의 다양한 경험을 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계기였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군대가 존재하는 목적인데, 그것은 누구나 알다시피 전쟁을 대비하는 일이다. 최거상 대리가 훈련을 받던 어느 날 실제와 다름없는 공격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당시 최 대리는 전방의 탱크 위에서 기관총을 거치한 채 보초를 서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시작된 전투 속에서 공격을 받아 죽고 말았다. 이게 뭔 소리일까? 사실 이것은 모의훈련이었던 것. 부대원들 모르게 상관들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부대원들이 적군으로 위장해 쳐들어온 것이었다. 이날 최 대리의 부대는 많은 사상자를 내고 말았고 이 훈련을 통해 전쟁의 공포를 짧은 시간이나마 느꼈다고 말한다. “전쟁은 일어나면 안 되지만 늘 대비하고 있기에 발생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 느꼈던 전쟁에 대한 경각심과 교훈을 늘 마음에 새기고 살고 있어요.” 어떤 역할로 있었든 어떤 모습으로 생활했든 어떤 훈련을 받았든 모든 군인들이 위대한 이유가 바로 이 대답에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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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김태현님

    군 복무를 하게 되면 많은 경험을 하게 되죠

  • 강정희님

    진짜 사나이 기사 정말 인상 깊에 읽었습니다.
    여자의 입자에서 다소 생소할수 있지만 즐겁게 봤습니다.

  • 미선님

    정말 다들 멋지고 대단하십니다.
    특히 이만수 대리님, 방병준 사원님 정말 훌륭한 경험하고 오신 분들이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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