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Together Vol. 129  2022.12월호

Special Story

유럽의 가스위기는 우리에게도 위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가스 시장의 판도가 변하고 있다. 수요자 중심이었던 시장은 공급자 우위로 전환됐다. 국가 간 역학관계에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가스수급위기를 맞은 유럽연합(EU)의 여파는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유가 없다. 에너지 안보가 절실한 때다.

글. 내일신문 이재호 기자

전쟁 이후 예상했던 것과 예상하지 못했던 것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이 전쟁은 세계 에너지 시장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에너지 안보의 절대성’이다. 에너지 안보란 국가경제 활동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합리적 가격에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각종 에너지가격이 치솟았다. 당장 올 겨울은 유럽을 중심으로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추위를 맞이할 거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첫 100일 만에 화석연료 수출로 930억 유로(125조 원)를 벌어 전쟁비용을 능가하는 거금을 거둬들였다.

전쟁이 막 시작됐을 때만 해도 이렇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유럽은 오히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끊고 재생에너지 기틀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례로 전쟁이 일어난 지 약 보름 후인 2022년 3월 8일 EU 집행위원회는 ‘REPowerEU’를 발표했다. ‘더 저렴하고,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위한 유럽 공동행동’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계획에는 2030년 이전까지 러시아산 화석연료에서 독립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아울러 2022년말까지 유럽이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가스의 양을 2021년 수준(155bcm)의 2/3(101.5bcm)로 줄인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이 계획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펴낸 ‘러시아 천연가스 수출 규제조치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EU의 에너지원별 소비비중은 석유 35.9%, 천연가스 24.5%, 재생에너지 12.5%, 원자력 11.0%, 석탄 10.6%, 수력 5.5% 등이다. EU는 이러한 에너지 총 소비량 중 57.5%를 수입해 들여온다. 그중 러시아산 비중이 석탄 46.7%, 천연가스 41.1%, 석유 26.9%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에서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입을 많이 하는 국가에서는 에너지 안보가 최우선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천연가스 비축과 공급선 다변화, 신규 원전 건설, 해상풍력을 이용한 전력 공급, 그리고 요금인상을 통한 수요관리를 통해 추운 겨울을 견디고 버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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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가스 시장 판도 뒤흔드는 유럽의 가스수급위기

이 중 겨울철 난방의 의존도가 높고 산업용 수요가 많은 ‘가스’를 집중해 살펴보자. 파이프라인가스(PNG)의 경우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물량 외 노르웨이, 북아프리카(알제리, 리비아 등), 아제르바이잔에서의 추가 도입이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유럽은 중동이나 미국에서 액화천연가스(LNG) 도입으로 눈을 돌렸다. 북서유럽은 LNG터미널 등 LNG 인프라가 미비하긴 하지만 물량 확보엔 나름 성과가 있었다. 영국의 LNG 인프라를 활용해 영국 LNG터미널에서 수입한 후 이를 재기화해 파이프라인으로 들여오는 방식도 유효했다.

EU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9월까지 대(對)EU LNG 최대 수출국은 미국(44%)이었으며 러시아(17%), 카타르(13%) 순이었다. 세계 최대 LNG 수출국도 2020년 카타르, 호주, 미국에서 2022년에는 미국, 호주, 카타르 순으로 바뀌었다. 미국 등에서 유럽으로 도입된 신규 LNG 물량의 상당부분은 중국과 중남미 물량을 잠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2022년 상반기 중국의 LNG 수입은 전년 동기대비 20%(11bcm) 감소했다. 한국도 스팟물량 확보에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러시아가 유럽으로의 가스공급 물량을 더 줄이거나 전쟁이 장기화된다면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국가들과 유럽의 LNG 도입경쟁은 갈수록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유럽의 가스수급위기는 글로벌 가스 시장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가 자국산 석유가격 상한액을 배럴당 60달러(약 7만 8,000원)로 제한하기로 한 서방국가들의 합의에 대해 이 제도 적용국가에게 석유와 석유제품, 가스를 팔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서 12월 2일 EU가 러시아의 전쟁자금 조달을 어렵게 하기 위해 러시아산 석유가격 상한액을 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 석유가격 상한제에 동참한 미국과 일본, 영국이 포함된 주요 7개국(G7)과 호주도 파장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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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중동 시장에서 유럽과 힘겨운 경쟁 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가스위기는 지난 10여 년 이상 지속됐던 글로벌 가스 시장에서의 수요자우위 포지션이 공급자우위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계기도 마련했다. 전쟁이 끝나거나 러시아의 대유럽 PNG 공급이 정상화된다면 다시 수요자우위 시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당분간 현재 분위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여 년 이상 수요자우위 시장이 지속되면서 가스가격은 하락했고 가스 프로젝트의 투자수익률은 떨어졌다. 이로 인해 주요 프로젝트가 연기되거나 중단됐고 글로벌 가스 시장에서 초과 공급량은 점차 줄었다.

탄소중립 추진도 가격이 저렴한 가스(PNG) 비중을 높임으로써 공급자우위 시장으로의 전환에 한 몫을 담당한 셈이 됐다. 간헐적이고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이를 보완할 유연성 에너지원이 필요한데 유럽은 그 대안으로 가스를 선택했었다. 아울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연산 5,000만 톤 규모 러시아의 북극 LNG 개발이 연기됨에 따라 우리나라 등 LNG 수입국에게는 악재가 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면에 가스 시장 패권을 둘러싼 국가 간 역학관계에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유럽은 올해 동계시즌과 2023년 가스 수요에 대비해 미국, 아프리카에서의 LNG 도입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에서의 러시아산 가스공백을 자신들이 충당하기 위해 대서양 LNG라인을 최대한 가동할 구상이다. 러시아는 유럽에서의 판매 감소분을 아시아, 특히 중국시장에서 만회하기 위해 중-러 가스밀월관계(Pivot to China) 구축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가스 시장이 공급자우위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현상까지 겹쳐 연간 4,500만 톤 이상의 가스 수요를 100% LNG로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최대 피해자가 될 우려가 크다. 그동안 글로벌 LNG 시장에서 일본, 중국과 힘겹게 경쟁해온 한국은 이제 미국, 중동 시장에서 유럽 에너지기업들과 더 힘겨운 물량확보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 중 가장 큰 문제는 2024~2028년 만료되는 장기계약물량이 상당수에 이르는데 재계약시점에 글로벌가스시장이 공급자우위 시장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유럽의 가스위기는 곧 우리의 위기인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도 글로벌 가스 시장과 장단기(스팟 시장 포함) 가스 도입을 위한 면밀한 점검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공급자우위 시장에서 우리의 생존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가스 시장 개편여부나 유럽의 전력가스규제청처럼 전기가스위원회나 에너지감독위원회 체제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유연성 전원인 가스발전은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수소발전 같은 차세대 유연성 전원이 일정 정도 우리 전력망에 들어올 때까지 징검다리 연료로 그 역할을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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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기고자의 견해로 삼천리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 9

  • 전승호님

    에너지안보 강화를 위한 국민참여를 응원합니다

  • 청죽님

    우리나라도 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소비 다변화를 통해서 적덜히 대응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 최인혁님

    이번 글을 통해 에너지안보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이준범님

    우리도 에너지 다변화를 통해서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 김대엽님

    유럽의 가스위기는 우리에게도 위기다 기사 내용 잘읽었습니다.
    위기가 곧 우리에게 잘활용하면 기회가 될수 있을것 같습니다.

  • 김재원님

    에너지 안보와 국민의식 고취를 위해 응원합니다

  • 김태현님

    가스 공급이 나누어지는 결과를 가져오니 우리도 위기네요

  • 이정훈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의 가스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는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프로 보니 엄청나게 심각한거 같아요~
    이 기회를 잘 살려야 될거 같습니다.

  • 김지환님

    에너지가 국력인 시대에 우리나라도 에너지 개발에 힘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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